“생기부가 무서워, 시험 오류를 말하지 못한다”
- 정재훈
- 2025년 7월 17일
- 2분 분량
시험지엔 분명 오류가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손을 들지 않은 아이,
말리고만 있는 엄마,
표정 하나 바꾸지 않는 교사.
그 시험은 그렇게 지나갔다.
시험이 틀렸을 때, 학생은 말하지 않는다
“이 문제, 보기가 다 맞는데요?”
“여기는 문제 조건이 모순되어서 풀 수가 없어요.”
교실 안에서 이런 말이 들릴 법한 순간은 분명히 있었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손을 들지 않는다.
왜일까.
한 고등학생은 이렇게 말한다.
“괜히 나섰다가 수행평가 점수 깎이거나,
생기부에 애매한 문장 들어갈까봐요.
그냥 조용히 틀리고 말죠.”
시험 오류보다 더 무서운 건, 그걸 지적한 뒤에 오는 불이익이다.
학부모는 그걸 알면서도, 말하지 못한다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의 부모는
문제가 틀렸다는 걸 알아도 학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부모도 안다.
“굳이 애한테 피해 갈까 봐요.
그냥 점수 좀 깎이고 마는 게 낫죠.
생기부 한번 날아가면 대학 못 가는 건데…”
이 선택은 비겁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정당함보다 입시가, 진실보다 생기부가 더 강력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선택된 침묵이다.
문제는 교사가 지닌 과도하게 집중된 평가 권한이다
현재의 학교는 한 교사가
수행평가, 태도, 수업 참여, 출결, 생기부 서술까지 학생의 전반적 평가를 담당한다.
이 평가들은 정량 기준 없이 비공개로 진행되며, 학생과 학부모는 내용조차 확인하거나 이의 제기하기 어렵다.
이런 구조에서 학생이 시험 오류를 지적한다는 건,
단순한 ‘정답 지적’이 아니라 권력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가 된다.
그리고 그 대가는 점수나 기록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평가의 감시는 없고, 책임의 순환은 끊긴 상태에서,
학생은 침묵을 택할 수밖에 없다.
그 오류는 구조 안에서 언제든지 발생하고, 그대로 묻힌다
한 고등학교에서 수학 시험 문제 중 하나가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아예 풀이가 불가능한 문항으로 출제됐다.
A학생은 시험 중 손을 들었지만,
“문제 오류 아닙니다. 계산이 까다로운 거예요.”라는 교사의 답을 들었다.
이의신청서를 제출했지만,
학교는 "정답에 문제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문제는 4.8점짜리였고,
그 4.8점으로 A학생은 내신 2등급이 아닌 3등급을 받았다.
내신 반영을 상당수 차지하는 수시 전형에서 그 등급은 합격과 불합격을 가른다.
하지만 이 사건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시험지는 공개되지 않았고, 교사 회의록도 존재하지 않으며, 교육청에 보고되지 않았다.
이러한 사건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나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 속에 있다.
시험은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입시 구조는 그 실수를 묻히게 만든다.
시험에서의 실수는 인간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실수가 끝까지 정정되지 않는 이유는, 그 시험이 입시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특히 수시 전형 중심의 입시 구조는 교사에 의한 정성 평가 비중이 과도하게 높다.
내신, 수행평가, 세부능력 특기사항, 태도 평가는 모두 교사 개인의 판단에 좌우되며,
이 과정은 감시받지도, 교차 검토되지도 않는 ‘닫힌 평가 구조’다.
그 결과,
학생은 오류를 지적할 수 없고,
학부모는 문제 제기할 수 없고,
교사는 반성할 필요도 없다.
결국 이 구조는
실수를 수정하지 않는 교육,
침묵을 강요하는 학교,
투명하지 않은 입시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우리가 쓰기 시작했다
정재훈 교육저널은
시험 오류를 지적하는 순간,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구조를 고발하기 위해 창간됐다.
우리는 시험지를 다시 보지 않는다.
우리는 시험지를 넘긴 학생의 손을 본다.
그리고 그 손이 왜 들리지 않았는지를 기록한다.
우리는 감시하고 기록한다
오류를 말하지 못한 학생의 손,
점수를 믿지 못한 학부모의 침묵,
실수에도 침묵한 교실,
책임이 전가되지 않는 평가 시스템
정재훈 교육저널은 이 구조를 기록하고,
이 구조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추적하는 언론이 되겠다.
우리는 지금, 그 첫 문장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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